▲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강수지

피겨스케이팅에 김연아, 리듬체조에 손연재가 있다면 태권도 품새엔 강수지(22, 한국체대4)가 있다.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4연패를 노리는 그녀에게 '품새'는 어떤 의미일까?

31일 인도네시아 발리 웨스틴 리조트 컨벤션센터 만난 강수지에게 품새를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고 하니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제 친구죠. 반평생을 함께 했으니까요"라고.

도장을 운영하는 태권도인 아버지 강재진 씨 밑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수련한 강수지는 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품새 선수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식사시간을 빼곤 품새와 함께했다고 하니 친구라는 표현이 이해될 만도 했다.

강수지는 "품새 연습 빼곤 달리 취미도 없었어요. 시간이 있으면 그저 푹 쉬는 게 전부였습니다"라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가 11월 3일 제8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4연패 도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내년 2월 졸업 이후 친오빠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강수지는 "영어공부를 하고 체육학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나중에 정국현 교수님처럼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태권도 품새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라는 포부를 밝혔다.

만 22세. 선수생활을 마감하기엔 이른 나이다. 특히 품새는 연륜이 쌓일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에서도 출전부문을 나이로 나누고 있어 중장년층은 물론 노년층까지 국가대표가 돼 참가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 남녀 각각 17세 이하, 29세 이하, 39세 이하, 59세 이하, 59세 초과에 총 12명의 대표선수를 출전시켰다.

태권도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갑자기 은퇴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강수지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 과정에서 주위의 견제를 적지 않게 받았다. 201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챔피언이 되고 "만년 2위에서 처음으로 우승까지 차지해 기뻤다"고 말한 바 있는 그녀는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배웠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그래서 졸업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해보자고 계획했습니다."

잠잘 때, 먹을 때를 제외하곤 언제나 함께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허탈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선수생활을 그만하겠다는 것뿐이에요. 운동은 계속할 생각"이라며 친구인 품새와 더 가까워지겠다고 밝혔다. 친구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임하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다. "우승은 여전히 목표지만, 마음은 편하게 먹고 있어요. 한 번도 경기를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은 마음을 내려놓고 있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부담감은 떨쳐놓고 좋은 경기를 위한 긴장감은 가지고 매트 위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4연패 달성에 대한 간절함이나 마지막 경기와 은퇴에 대한 아쉬움보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을 더 가지고 있었다.

강수지의 목표는 좋은 지도자가 돼 태권도 품새를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겠다는 것이다. 품새가 겨루기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 분위기도 바꿔보고 싶다.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3연패의 실적으로 훈장을 신청해봤는데 수상자는 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겨루기 선수들을 더 인정하는 분위기라서요"라는 강수지는 "품새도 겨루기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외국처럼 국내에서 품새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친구는 남은 삶에서도 함께할 것이다. 강수지는 그 친구가 가진 장점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태권도전문기자회 공동취재단 / 발리=이교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