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태권도
> 칼럼
태권도의 날 단상. 9월 4일과 4월 11일 사이에서
인사이드태권도  |  kaku616@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9.04  08:36: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박성진 칼럼]

9월 4일은 태권도의 날이다. 태권도의 날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태권도는 1994년 9월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03차 IOC총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올림픽 종목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음은 여기서 새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올림픽 종목이 됨으로써 태권도는 전 세계에서 명실상부한 국제스포츠로서 공인을 받았다. 2000년시드니올림픽에서 올림픽 무대에 첫 선을 보인 이후 20년 간 태권도의 국제스포츠로서의 위상이 더욱 확고해졌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특히 올해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서의 태권도가 성년이라고 할 수 있는 만 20년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제는 올림픽 종목이 아닌 태권도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관점도 있다. 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것이 올림픽 태권도를 관장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이다.

그런데 태권도의 날은 9월 4일이 아니라 4월 11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권도인들도 있다. 태권도가 만들어진 것이,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태권도'라는 말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55년 4월 11일이기 때문에 4월 11일이 태권도의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국제태권도연맹과 그 초대 총재인 최홍희의 추종자들을 통해 강조된다. 최홍희가 태권도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최홍희가 자신의 책 <태권도와 나>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태권도라는 명칭이 제정된 것이 1955년 '명칭제정위원회'를 거쳐서 4월 11일에 처음 탄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이경명)도 있다. 최홍희의 책에서 말하고 있는 4월 11일은 태권도라는 말을 처음 정한 날이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으로부터 태권도(跆拳道)라는 휘호를 받은 날이고 최홍희가 말하는 '명칭제정위원회'의 사진 및 날짜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4월 11일이 명칭제정위원회 회의의 날짜인지, 아니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붓글씨를 하사받은 날짜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태권도의 날에 어떤 것을 의미로 둘 것이냐는 점이다. 태권도의 호적상 생일이 1955년 4월 11일인 것이고, 그 호적에 등재한 날짜가 정말 생일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뿐, 태권도가 1955년생 양띠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권도의 날을 4월 11일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9월 4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태권도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태권도를 인격화해서 생각한다면, 태권도가 처음 태어난 날짜를 중요하게 보고 생일을 정할 것인 것, 아니면 1955년생인 태권도가 불혹의 나이인 마흔살(1994년)에 달하면서 이뤄낸 커다란 성취를 중요하게 보고 그 날을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다. 단순하게 치환한다면 태권도에 있어서, '이름'이 중요한가 '올림픽'이 중요한가의 문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태권도는 공수, 당수, 수박, 권법 등의 이름들과 혼용되면서 사용되었고, 어떤 명칭을 쓸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여기서의 공수와 당수는 물론 공수도와 당수도, 즉 가라테를 말한다.

지금은 누구도 태권도를 가라테와 혼용하거나 혼동하지 않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 중반까지도 태권도는 공수, 당수, 권법이라는 말들과 경쟁을 해왔던 것이다.

1955년 최홍희가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어내고 당시의 공수, 당수, 권법, 수박 등으로 지칭되는 무술들의 통합을 시도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최홍희와 군 태권도인 오도관, 그리고 오도관의 형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청도관의 엄운규 등은 태권도라는 명칭을 지지했지만, 지도관의 윤쾌병과 이종우, 송무관의 노병직, 창무관의 이남석 등은 공수라는 명칭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타협으로 나온 것이 태수도(跆手道)였던 것. 이것이 대한태권도협회가 대한태수도협회라는 명칭으로 창립(1961년)되고 1965년에 최홍희가 제3대 협회장으로 선출된 후에야 대한태권도협회로 명칭이 변경된 이유다.

최홍희가 아니었다면, 태권도라는 말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최홍희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태권도는 태수도 또는 택권도 등의 다른 명칭으로 바뀌었을 지 모르는 것이다.

1955년생인 태권도는 이제 환갑을 넘겼고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이 태권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올림픽 종목이 된 것일까? 그것은 사람의 삶에 비교한다면 커다란 사회적 성취를 이룩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무리한 비유를 하자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거나 큰 기업의 대표가 된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의 삶에서도 사회적 성취는 물론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작을 분명하게 되돌아보고 직시하는 것이 아닐까?

2020년 9월 4일 현재, 여러 면에서 태권도가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세계태권도본부이고 중앙도장이라는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근간이 되어야 할 국기원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있다. 기본이 바로 선 후에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기본이 바로서지 않으면,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 보인다 하더라도 결국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태권도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 기본은 무엇인가? 태권도란 대체 무엇인가? 태권도의 날을 맞아 가지는 단상(斷想)이다.

   
▲ 박성진 기자

<인사이드태권도 박성진 기자> 

인사이드태권도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1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 한국본부 창립식 개최
2
KTA, '품새'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 추진
3
세계어린이스포츠위원회, 미국 AAU와 업무협약
4
강원식·박해만 원로, '태권도를 빛낸 사람들'로 선정
5
국기원 연수원, 품새 교육용 콘텐츠 영상 개발
6
태권도원, 10월 16일 재개원
7
세계태권도연맹 역사상 첫 화상 총회 개최
8
KTA, “동승보호자 인건비 지원하고 단속 유예해 달라”
9
태권도진흥재단,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업무협약 체결
10
국기원태권도시범단, 시범기술 지도법 세미나 개최
격투기 대회도 신종 코로나 여파, TFC 드림 7 연기
격투기 대회도 신종 코로나 여파, TFC 드림 7 연기
개념없는 충북도의 충주무예마스터십 홍보
개념없는 충북도의 충주무예마스터십 홍보
충주무예마스터십, 화려한 개회식으로 막 올려
충주무예마스터십, 화려한 개회식으로 막 올려
포토뉴스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광명시 너부대로 35번길 15-19 A동 102호  |  Tel : 02-2615-5998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경기 아 50823
발행 인: 박성진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성진
Copyright © 2013 인사이드태권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aku6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