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복싱이 이번 달부터 헤드기어를 쓰지 않고 경기를 치른다.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회장 우칭궈)은 지난 해 7월 태국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2013년 6월부터 남자 선수들은 헤드기어를 벗고 링에 오르도록 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이 안건에서 여자와 주니어 선수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AIBA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 남자 선수들은 헤드기어를 벗고 경기해야 한다. 물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적용된다.

▲ 아마추어 복싱 선수이자 연예인인 이시영이 경기에서 훅을 허용하고 있다. 여자 경기에서는 여전히 헤드 기어가 착용된다.

AIBA의 이러한 결정은 우선 아마추어 복싱에서도 화끈한 KO 승부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올림픽에서도 KO 승부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1982년 한국의 프로복서 김득구가 레이 맨시니와의 대결에서 14회에 KO패한 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후 프로 복싱 타이틀전의 라운드 수는 15회에서 12회로 줄었다.

아마추어 복싱도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부터 보호장구를 도입하는 등 복싱 전반적으로 선수들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헤드기어가 선수들의 안전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연구도 있다. 이번 AIBA의 결정에 근거가 된 견해다.

AIBA의 김호 사무총장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복싱 흥행을 위해 3년 전 이 방안을 제안하자 국제올림픽위원회 등에서 뇌손상의 위험이 있다며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최근 영국 의학협회가 '헤드기어를 쓸 경우 더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를 IOC에 제출하면서 논란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헤드기어를 쓰고 충격을 받으면 헤드기어와 머리의 공간에서 통증 잔상이 오래 남지만 착용하지 않으면 충격이 빠르게 사라진다”면서 “IOC 메디컬위원회에서도 통과한 만큼 내년 IOC 집행위원회의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결정은 아마추어 복싱의 경기 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펀치력과 체력이 좋은 선수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점수에 의존하는 테크니션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AIBA의 이러한 결정은 복싱의 재미를 더하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프로 선수들의 참가를 허용하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읽힌다. 프로와 아마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실제로 AIBA는 'APB'라는 자체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소속된 프로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APB의 문이 현재 타 단체에 소속된 프로 복싱 선수들에게도 열려있다는 점이다.

우칭궈 AIBA 회장은 "APB는 제한된 조건에서 현 프로 복싱 선수들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APB에 소속된 복서들이 2016년 올림픽에서 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한된 조건이란 기존의 프로 복싱 단체나 기구에서 15전 미만의 전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WBC를 비롯한 프로 복싱 기구들은 이러한 AIBA의 결정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아마추어 복싱 기구인 AIBA가 프로 복싱의 영역까지 잠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WBC의 호세 술라이만 회장은 최근 AIBA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반발은 AIBA도 이미 예상한 바다. AIBA의 김호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이 정식으로 시행되면)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없어질 것이다. 프로와 생존을 건 싸움도 이제부터다"라며 프로 복싱계와의 '일전'에 대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세계 스포츠계의 전쟁은 경기장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무림통신 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