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임신자 교수가 태권도 개론서 한 권을 새롭게 펴냈다. <태권도 개론 - 태권도 이해와 적용/상아기획>이라는 책이다.

나는 이미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을 남겼다. 이 책은 개론서 답게 태권도를 큰 주제로 해서 역사, 기술, 자연과학 등의 몇 개 분야로 태권도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하였다. 서평에서 말한 것처럼 기존에 태권도와 관련되어 나와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볼 만한 책이 극히 드문 현실에서 그나마 잘 정리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른바 '주례사 비평'임을 감수하면서 책에 대한 호평으로 소개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지적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군데군데 정확하지 않은 표현, 부정확한 사실관계, 불분명한 인용과 이해 등이 보이기 때문이다. 비문이 너무 많이 보인다는 것도 미안하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내용들에 대해 꼬치꼬치 다 지적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부분에 관해서 만큼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필자와 직접 관계가 있는 사진과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적하는 부분은 이 책 60페이지의 박철희 선생과 관련한 부분이다.

우선 사진과 관련해서 설명하자면, 이 사진은 2010년, 당시 박철희 선생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던 <태권도타임즈>의 홍상용 대표가 박철희 선생의 태권도인 파사권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서 세미나 또는 수련회가 끝난 후에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인천에 있던 <태권도타임즈>의 부설 태권도장이었다. 이 책에서는 마치 박철희 선생이 외국(미국)에 계시다가 불쑥 방한을 하셔서 특별히 만들어진 자리인 것처럼 설명되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박철희 선생은 이미 90년대 중반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시고 귀국하시어 국내에 거주하고 계신 상태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세계품새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송남정 사범, 국기원연구소의 최치선 연구원, 현재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하고 있는 칼슨 그레첸 사범, 베트남 태권도인 휴캉,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몽골인 유학생,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이 참여했다.

그 날 이후에도 수련은 매주 토요일 이어졌는데, 토요일 수련에 참가한 사람은 베트남인 휴캉과 나 두 사람 뿐이었다. 나는 지방 출장을 가는 경우가 아니면 이 토요일 수련에 빠지지 않았고, 그 수련은 태권도타임즈가 서울로 이전할 때까지 1년 반 가까이 이어졌다.

수련이 끝나면 나는 박철희 선생을 모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실기 수업에 이어진 이론과 역사 수업이었기 때문에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이렇듯 거의 매주 토요일 박철희 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던 제자라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박철희 선생과 관련된 다음의 부분은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근래에 박철희 원로(YMCA 권법부 윤병인 관장의 직계제자)는 초기의 태권도는 가라테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무술인 택견과 중국 복권성(복건성의 오기)의 권술이 통합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 부분은 잘못된 부분으로 내가 알기로는 박철희 선생은 이러한 주장을 하신 적이 없다. 만약 있다면 임신자 교수는 그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박철희 선생이 다른 어느 태권도인보다도 먼저 택견에 관심을 가지고 근대 택견의 시조인 송덕기 선생을 만나고 교류를 하신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교류가 송덕기 선생의 택견이 태권도에 포함되었다고 서술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아니다. 박철희 선생 외에, 그 제자인 김병수 선생 외에, 태권도인들 중에서 송덕기 선생을 직접 만나서 교류를 하거나 또는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태권도인을 나는 한 사람도 알고 있지 못하다.

나는 박철희 선생 생전에 택견과 송덕기 선생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한번도 택견을 배웠다고 말씀하시거나 태권도에 택견이 포함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계셨다. 택견과 태권도는 전혀 별개의 무술이라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철희 선생 외에는 송덕기 선생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태권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휴스턴의 김병수 선생의 생각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박철희 원로는 2010년 방한했을 당시 몇 가지 동작을 시연하였는데, 동작들이 부드럽게 회전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마치 중국의 태극권이 연상되기도 하였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또 누구의 말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물론 박철희 선생의 동작이 너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다보니 태극권을 연상시킨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말을 도대체 누가 한 것인가? 임신자 교수는 그 세미나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박철희 선생의 동작을 보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인지?

▲ 책에 사용된 사진 원본. 왼쪽부터 몽골인 수련생, 박성진, 칼슨 그레첸 사범, 박철희 선생, 송남정 사범, 최치선 연구원, 휴캉

내가 굳이 이러한 지적을 하는 것은 내가 1년 넘게 가까이서 본 박철희 선생의 동작은 전혀 태극권 같은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철희 선생은 그 때 이미 80에 가까운 나이셨고 다리와 무릎이 대단히 불편하셨기 때문에 발동작은 앞차기를 하시더라도 무릎 위를 올라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간혹 보여주시는 손동작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이 빠르고 강렬했다. 양가 태극권이 아닌 진가 태극권에 비유를 한 것이다라고 변명한다면 또 그럴 수 있지만 그 역시도, 임신자 교수는 본인이 직접 본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보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본 것처럼 아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학자로서 크나큰 결격사유이자 악덕이다. 최소한 근거가 되는 레퍼런스 만큼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게다가 복권성(복건성도 아니고)의 권술이라니. 복건성은 남파무술의 본거지이고 박철희 선생이 스승 윤병인 선생으로부터 배운 무술은 북파무술(만주권법)이다. '주안파'라는 별개의 무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권법(CHUAN FA, 拳法)'을 배웠을 뿐이다. 그것도 복건성의 남파권법이 아니라 북파권법인 만주권법을.

이 책보다 훨씬 함량 미달인 태권도책들은 놔두고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이 책이 대학 태권도학과의 교재로 쓰인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으로 태권도와 태권도 역사, 태권도 이론을 배우고 난 학생들은 자신들이 잘못배운 내용이 마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틀림없는 사실이며 진실이라고 착각을 할 것이 아닌가.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장차 태권도계에서 중요한 일들을 하게 될 태권도 명문 경희대학교의 태권도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만약 이 글에 대한 반론이 있다면 환영한다. 임신자 교수의 <태권도 개론>이 정체되어있는 태권도계의 역사와 이론 연구에 부싯돌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올린다.

<인사이드태권도 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