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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원로 태권도인의 정의론과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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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01  12: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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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의 일이다. 한 후배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태권도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원로 태권도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 후배 말이, 그 분을 만났었는데, 그 분 옆에 책이 한 권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그냥 놓여있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읽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책의 제목을 보니 <정의란 무엇인가>였다고 했다.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센델의 바로 그 책이었다.

나와 그 후배는 그 태권도 원로와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궁금했다. 과연 그 태권도 원로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는데 동의했다. 그 태권도 원로가 생각하는 정의와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리고 나서 몇 년 후에, 이번엔 내가 그 태권도 원로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 분과 단 둘이 쇼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분의 자리 옆에 있는 한 권의 책이 내 눈에 띄었다. 제목을 봤더니 이번엔 <군주론>이었다. 마키아벨리의 바로 그 군주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속으론 흠칫 놀라며 몇 가지를 생각했다.

'아, 이 분이 정말 책을 읽으시는구나. 게다가, 군주론? 취향도 고급스러우시구나. 그런데, 마키아벨리? 이 분하고 제법 어울리지 않는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익명으로 거론된 그 원로에 대한 내 생각을 굳이 밝히자면, 그 분을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당대 최고의 태권도인이었으며 태권도계에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겼고 가까이서 본 경험이 많은 내가 보기에 장점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분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할 뿐만 아니라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책을 가까이하고 계셨다는 점은 특히 존경받을 만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태권도 원로로서 내가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을 그 분한테 표한다.

굳이 이렇게 사족같은 설명을 붙이는 이유는, 그 원로에 대한 태권도계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존경하는 스승님, 선배님, 회장님일 수 있지만, 다른 또 누군가에게는 태권도계에서 물러나야 할 대표적인 구세대라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원로 태권도인을 좋아하는 쪽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족적을 남긴 태권도인들에 대한 평전의 차원에서.

나에게 다시 그 원로 태권도인이 마이클 센델의 정의론과 마키야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있었던 것이 떠오른 것은,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던 중이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사회구현.' 이것은 1980년, 다른 건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내건 모토였다. 마오쩌뚱의 문화대혁명이나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 역시 그들의 기준에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였을지 모른다. 아니, 사실 그들이 보여준 광기로 보건데, 그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정의가 어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하는 것일 뿐.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데에도 피가 필요한 것인가.

아직도 스스로는 어리고 어리석은 나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젊은 20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한참 오랫동안 정의의 기준이 분명하게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그 기준이 변하지 않고 더욱 분명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50이 될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만 50살을 넘기면서 그러한 기준들이 희미해져 버렸다. 아니, 사실은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본다면 거의 '전향'이나 '변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정도가 되었다. 그 자세한 이유와 내용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정의'를 내세우는 사상이나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는 칼 포퍼의 말을 이제는 더 이상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도저한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다시 정의론과 군주론을 읽어보면 기준이 세워질까? 아마도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그 책들을 다시 읽어는 보아야겠다.

<박성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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