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식에 앞서 대회 관계자들이 경기중이던 매트를 뜯고 정리하고 있다.

태권도 경기 사상 초유의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심판들이 대회를 보이코트하고 경기장을 떠난 것이다. 8월 6일, 미국 워싱턴 D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주미대사배 태권도대회에서였다.

태권도가 스포츠로서 자리잡은 이후 태권도 경기장에서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심판들이 경기 진행을 포기하고 대회장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대회는 재미대한태권도협회(회장 김광웅)의 주최와 미동부대한태권도협회(회장 이문형)의 주관으로 지난 2014년에 첫 번째 대회를 연 이후 이번으로 두 번째를 맞은 대회였다.

현재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각국대사배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가장 많은 한국인 및 한인 사범들이 거주하고 있고, 정치 경제적으로도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에서 대사배라는 명칭으로 태권도대회가 개최되고 있다는 점에서 재미한국인 사범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회로 이 대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중요성에 걸맞게 이날 대회 개막식에는 안호영 주미대사는 물론이고, 유미 호건 메릴랜드주지사 부인, 린다 한 글로벌한인연대 회장 등 주요 VIP 들이 참석해 대회의 중요성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대회에서 심판들이 대회를 보이코트하고 대회장을 떠났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심판비용이다. 대회조직위원회(위원장 김광웅, 사무총장 이문형)는 당초에 대회를 준비하면서 심판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약 1만불을 책정해 뒀었다.

이에 따라 대회 심판위원장을 맡은 김석중 위원장은 국제심판 자격이 있는 심판 20명을 포함해서 총 47명의 심판진을 구성했다. 이에 필요한 경비로는 약 7천 5백불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됐고, 김석중 위원장은 이 같은 내용을 조직위원회에 전달했다.

그러나 대회를 하루 앞두고, 대회조직위원회 측은 참가인원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심판비용으로 5천불밖에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김석중 심판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심판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양 측은 이 문제를 놓고 협상을 했으나 결론없이 결렬됐고, 다음날 열릴 대회의 정상적인 진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조직위원회 측과 심판들 간의 갈등이 미봉된 상황에서 심판들은 일단 대회만큼은 정상적으로 진행을 하기로 하고, 대회 당일인 8일 오전부터 경기 진행을 맡았다.

그런데, 갈등의 골이 마침내 폭발한 것은 대회 개막식에서 였다.

개막식이 예정됐던 오전 11시가 되었으나 오전에 진행 중이던 품새 등 일부 경기는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품새경기가 진행중인 경기장으로 개막식 행사로 예정됐던 취타대가 진입하기 시작했다.

▲ 개막식 행사로 취타대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취타대의 입장으로 경기장은 시장통처럼 어수선하게 엉망이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조직위원회 측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심판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석중 심판위원장 이 문제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고, 다른 심판들을 이끌고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잠시의 소란이 있은 후 개막식은 진행됐다. 사물놀이 등 한국문화 공연, 국기원 태권도시범단의 시범 등으로 개막식 자체는 좋은 반응으로 끝났지만, 개막식 이후에 불만을 표출하고 경기장을 나간 심판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오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에 공동대회장을 맡았던 린다 한 회장, 재미대한태권도협회 박연환 회장 대행 등이 심판들을 만나서 경기 속개를 요청하며, 갈등의 시작이 된 심판비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미 문제는 심판비용 자체가 아닌 상황이었다. 실제로 심판들이 대회를 포기하고 나가버리자, 경기 참가를 할 수 없게 된 일부 참가자들이 참가비 반환을 요구했고, 반환된 비용은 심판들이 추가로 요구했던 2천5백불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들이 가장 크게 불만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이번 대회가 이름은 주미대사배대회라는 명칭을 하고 있지만, 그 운영에서는 이름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이문형 사무총장에 대한 불만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었다.

김석중 심판위원장은 "대회가 국제대회 수준에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고, 대회 명칭이 주미대사배 대회인 만큼 미국 국내에서 열리는 수준급 대회로는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대회 운영을 맡고 있는 이문형 사무총장은 이번 대회 자체를 마치 미국 동부 일부 지역에서만 열리는 로컬대회로 인식하고 있고, 대회 운영도 주먹구구식이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대회는 제1회 대회에서 600여 명이 참가한 것에 비해 이번 대회에는 400명 정도가 참가해서 대회 규모가 줄어들었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미 전역에서 참가하는 것은 기대하지도 못했고, 대회장인 워싱턴 DC 인근인 메릴랜드, 버지니아 주의 한인 태권도 사범들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지막까지 심판진에서 요구한 것은 이문형 사무총장의 진심이 담긴 사과였다. 심판들은 조직위원회로부터 최소한의 예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는 상황이었다. 호텔 숙박에서 아침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문제, 호텔과 경기장 간의 수송 문제, 점심 심사 식권 배부 문제 등으로 심판들은 조직위원회에 불만이 크게 쌓여있던 상황이었다.

단순히 예정됐던 심판비를 모두 준다고 해서 심판들의 감정의 골이 풀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이문형 사무총장은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았고, 결국 심판들은 경기장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심판들이 없어진 대회장에 경기는 진행이 되었을까?

▲ 개막식이 끝난 후 어수선한 상태에서 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기는 끝까지 진행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진행이 엉망이었다는 것은 미루어서도 짐작이 가능한 문제였다.

실제로 오후에 진행된 겨루기 경기에서는 예정됐던 심판들이 없어지자, 조직위원회에서 대회에 참가한 일부 코치, 사범들에게 즉석에서 심판을 부탁했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코트에 올라간 심판들의 코트 곳곳에서는 심판의 진행에 대한 항의가 빈번했다.

대회장에서 만난 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은 "심판들이 경기장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렇게 엉망인 대회는 처음이다. 앞으로 다시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부모로 보이는 미국인 관람객들 중에서도 "심판이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진행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문형 사무총장은 이번 대회의 성격에 대해 "이 대회는 전국대회가 아니라 지역대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이 이 대회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주미대사배라는 명칭의 대회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 주미대사배 대회는 전 미국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는 모든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이 중심이 되는 대회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미대사배대회는 미국에서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이 화합할 수 있는 큰 대회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대회다. 그런데 이 대회가 앞으로도 이렇게 운영이 된다면, 제3회, 제4회 대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 안호영 주미대사가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안호영 대사는 이번 대회에서 개막식에만 참석하고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대회장에서 발생한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안 대사가 이번 대회에서 발생한 일을 모두 보고받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미대사배대회라는 명칭으로 태권도 대회를 지속할 의지가 여전히 남아있을까? 그것이 우려되는 것이다.

<인사이드태권도 박성진 기자>